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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햇살 아래 익어가는 포도, 유리잔 속 붉은 기억
🍇 서론: 시칠리아의 시간은 와인으로 흐른다
시칠리아의 서쪽 끝, 지중해 바람이 부드럽게 머무는 도시 마르살라(Marsala).
이곳의 이름은 곧 한 잔의 와인을 의미하죠.
마르살라 와인, 그리고 그 와인을 만든 사람들과 땅, 햇살, 시간까지.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고, 모든 것이 오래 남아요.
이 도시에서의 오후는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포도밭 사이로 이어지는 흙길,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그리고 가만히 앉아 마시는 한 잔의 와인.
그 속에서 삶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천천히 풀어집니다.
1. 오래된 와이너리의 정원으로 들어서다
우리는 마르살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Donnafugata 와이너리로 향했어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포도 향과 진한 흙냄새,
그리고 오래된 벽돌 창고에서 퍼져 나오는 와인의 숨결이 반겨줍니다.
📍 Donnafugata는 1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
그 이름처럼 ‘도망친 여왕’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죠.
벽마다 그려진 일러스트, 와인 병마다 붙은 레이블은 모두 예술작품 같았어요.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오크통 숙성실을 둘러보고, 포도밭 위의 산책길로 걸어 올라가면
시칠리아의 태양이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조용한 정원 의자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으며 마신 첫 와인.
달콤하지만 끈적이지 않은, 부드럽고 길게 이어지는 여운.
그건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이야기처럼 다정했어요.
2. 와인과 함께한 한 접시 – 미각의 오후
테이스팅룸으로 들어가면
섬세하게 준비된 치즈, 빵, 올리브,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마르살라 와인이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는 네 가지 와인을 시음했어요:
- Secco: 드라이한 마르살라, 염장된 치즈와 환상적인 궁합
- Superiore: 꿀처럼 은은한 향이 나는 세미 드라이 타입
- Vergine: 깊고 복잡한 향, 10년 이상의 숙성
- Dolce: 디저트 와인처럼 달콤하고 여운이 오래가는 마지막 잔
🍽️ 와인과 함께 곁들인 시칠리아식 브루스케타,
올리브 오일이 흠뻑 밴 빵 위에 얹힌 바질과 토마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는 와인의 향기.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오후의 풍경’ 그 자체였습니다.
3. 마르살라 바닷가에서 마무리하는 노을 한 잔
와이너리를 나와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작은 부두와 바다가 이어지는 평온한 장소, **Stagnone Lagoon(스타뇨네 석호)**가 나와요.
이곳은 마르살라의 또 다른 얼굴.
하얀 소금 언덕과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풍차,
그리고 지평선 끝까지 번져가는 노을이 펼쳐져요.
우리는 그 자리에 앉아
막 사온 와인 한 병과 작은 컵을 꺼내
서로의 얼굴에 비친 석양을 바라보며,
오늘을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마무리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말이 줄고, 마음이 커져요.
모든 감정이 천천히 발효되는 것처럼요.
🍷 결론: 한 병의 와인이 여행을 완성시키다
마르살라는 ‘와인 도시’ 그 이상이에요.
이곳은 기억을 숙성시키는 공간이에요.
모든 감정이 머물고, 정리되고, 다시 천천히 피어나는 곳.
와이너리에서 마신 한 잔의 와인이,
돌아가는 길 내내 잔향처럼 마음에 맴돌았어요.
여행에서 진짜 기억나는 건 결국,
그날의 햇살, 바람, 그리고 누군가와 나눈 조용한 한 잔이 아닐까요?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마르살라 와이너리 투어는 예약해야 하나요?
A1. 네, 사전 예약이 필수입니다. Donnafugata, Florio, Pellegrino 등 유명 와이너리는 온라인 예약 시스템이 있어요.
Q2. 시음은 유료인가요?
A2. 대부분의 와이너리는 시음 + 투어 패키지를 유료(약 €15~€35)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와인 + 식사 포함 옵션도 있어요.
Q3.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나요?
A3. 마르살라 중심지에서 도보 이동 가능한 와이너리도 있으며, 멀리 있는 경우는 택시나 렌터카 이용을 추천합니다.